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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폭염에 인천공항 찾는 노인들… “제일 시원하니 좋아”
- 등록일 : 2023-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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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김민희, 이한빛 기자] “날마다 인천공항으로 출근해. 집이 너무 더워서 어쩔 수 없어.”
1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1층을 친구와 거닐고 있던 한명순(가명, 79)씨는 “공항이 시원하니 좋다”며 이렇게 말했다. 인천 부평구에 사는 한씨는 집에서 공항까지 왕복 3시간 정도 걸리지만 멀다는 생각이 안 든다고 말했다. 한씨는 “여기서 만나는 사람도 많다”며 앞서간 일행을 따라잡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경보가 내리며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씨를 보인 이날 오후 제2여객터미널은 노인들에게 무더위를 피할 쉼터가 돼주고 있었다. 여행용 가방이나 무거운 짐을 들고 바쁘게 움직이는 여행객들 속에서 노인들은 손발을 가볍게 하고 산책하듯 터미널을 거닐고 있었다. 터미널 의자마다 노인들이 담소를 나누며 쉬는 모습이 보였다. 도시락을 꺼내 먹거나 빵, 요구르트 등 간식을 나눠 먹기도 했다.
한씨와 함께 있던 박순자(가명, 78)씨는 “전철도 시원하고 여기(인천공항)도 시원하니까 찾게 된다”며 맞장구쳤다. 박씨는 서울 서대문구 집에서 지하철을 두세 번 갈아타면서 공항을 찾는다고 한다. 그는 “공원 같은 데는 너무 더워서 못 간다”며 “요즘 들어 사람들이 (공항에) 더 온다”고 말했다.
뜨개질을 하며 앉아 있던 김선미(가명, 79, 인천 미추홀구)씨는 “집에서는 에어컨 틀었다가 조금만 꺼도 더운데 여긴 항시 시원해서 쉬기 좋다”고 말했다. 김씨는 “오늘까지만 (뜨개질을) 뜨고 내일부턴 전철을 타고 다닐 계획”이라고 속삭이듯 말했다.
TV 앞에 있던 박영진(가명, 76, 남)씨는 “폭염에 노인들이 주위에 갈 데가 없어 여기가 제일 좋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같은 날은 더워서 돌아다닐 수도 없다”며 “여기는 먹을 것도 많고 화장실도 가깝고 시원하니 얼마나 좋냐”고 껄껄 웃었다.
중부지방에 폭염 경보가 발효 중인 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이 햇볕을 피해 무료급식을 기다리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이날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는 폭염에도 무료 급식을 기다리는 노인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노인들은 뙤약볕에서 흐르는 땀을 닦거나 부채질하며 순서를 기다렸다. 햇볕을 가리기 위한 우산도 등장했다. 노인들은 탑골공원 인근 카페, 편의점 등에서 더위를 피하기도 했다.
카페에서 더위를 식히던 이상진(가명, 75, 남)씨는 “집에서는 선풍기를 틀어도 덥고 에어컨을 틀자니 요금 폭탄 맞을까 봐 틀기가 무섭다”며 “친구와 같이 여기서 이야기하니 더위가 가신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김준기(가명, 75, 남)씨도 “카페가 에어컨도 틀어줘서 더위 식히는 데 금상첨화”라고 말했다.
한편 연일 무더위가 이어지며 전국에 온열질환으로 사망하는 노인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에서 80대 남성이 풀밭에 숨져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했다. 문경시 마성면에서도 밭일하려고 외출했던 90대 남성이 길가에 숨진 채로 발견됐다.
지난달 29일에도 폭염 속에 밭일하던 노인 4명이 사망했다. 경산시 자인면의 한 밭에서 70대 남성이 쓰러진 채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문경시 영순면에서 밭일하던 80대 여성이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했다. 당시 이 여성의 체온은 40도로 측정됐다. 김천, 상주시에서도 80대, 90대가 각각 온열질환으로 숨졌다.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온열질환자는 누적 1117명 발생했다.
출처 : 천지일보(https://www.newscj.com)